2012 기호유학 인문학 포럼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대행 김정섭)은 9월 1일부터 1박 2일간 계룡대 삼군본부 영관급 장교 가족들과 함께 ‘추사 김정희를 찾아 떠나는 인문학 이야기’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충남역사박물관을 출발하여 충남 예산에 위치한 추사고택 일원의 기념관과 추사묘역, 추사고택, 화순옹주정려, 추사의 상징과 같은 백송을 아우르고 추사의 글이 각인되어 있는 화암사와 추사가 비문을 쓴 상산황씨 묘역이 있는 서산의 개심사를 거쳐 서산 김기현 가옥 ‘계암고택’을 탐방했다.

인문학 강의는 ‘추사 이야기’를 쓴 표윤명 소설가의 ‘추사의 생애와 추사체에 관한 이야기’로 조선시대 한류 스타라 할 추사 김정희에 대한 이야기가 시원한 초가을의 밤을 밝혔으며 이어진 고택음악회에서는 ‘큰댁어울’의 대금연주와 함께 고택에서의 뜻 깊은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계암고택의 종부가 직접 만든 한식으로 든든한 아침을 즐긴 후 김기현 종손과 함께 정순왕후 생가와 추사의 암각 취석, 서산 대산리의 추사 어사비에 이어 추사의 처향인 건재고택을 포함한 아산 외암민속마을 답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실사구시를 주창한 실학자인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조선 후기의 서화가, 문신, 문인, 금석학자로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이며, 호는 완당(阮堂), 추사(秋史),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파(果坡), 노과(老果)등 1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명문가 노론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이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경험한 학자이며, 정치에도 뜻이 많았던 인물로 관료 생활 중에 두 번에 걸쳐 10년이 넘는 유배생활을 겪었다.

굴곡 된 삶 속에서도 학문과 예술의 일가를 이룩하였는데 24세 때 연경(燕京)에 가서 당대의 거유(巨儒) 완원(阮元), 옹방강(翁方綱), 조강(曹江) 등과 교유, 경학·금석학·서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예술은 시, 서, 화를 일치시킨 고답적인 이념미의 구현으로 고도의 발전을 보인 청나라의 고증학을 바탕으로 하였다.

19세기에 이르러 김정희는 북학사상의 심화단계로서 ‘실사구시설’을 저술하여 근거 없는 지식이나 선입견으로 학문을 하여서는 안 됨을 주장하며 실사구시학파를 주도하였으며 이들은 청나라의 고증학을 적극 수용하여 ‘실제적인 일에서 옮음을 구하고, 징험 없이 믿지 않는다(實事求是無徵不信)는 실학정신을 고취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사대부 출신 제자 및 중인 출신 제자들은 다함께 북학사상에서 개화사상으로 전환되는 시대에 교량역을 담당한 인물이다.

이번 2012 기호유학 인문학 포럼 ‘추사 김정희를 찾아 떠나는 인문학 이야기’에 참여한 삼군본부 영관급 장교 가족들은 다양한 연령층의 자녀들과 함께 해 민족적 자긍심과 미래 지향적 사고로의 전환을 위한 모티브가 되었다고 입을 모았으며 “전통 한옥에서의 하룻밤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기호유학 인문마당은 9월 15일 예산 추사고택에서 유홍준(전 문화재청장)과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에 대한 특강이 있고, 10월 13일 논산 돈암서원 박범신(소설가)의 ‘왜 인문학을 말하는가?’를 특강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