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평도조제와 아리타와의 교류

계룡산분청사기는 형태와 문양이 자유분방하고 서민적이면서 예술성이 뛰어나 전남 강진의 청자, 경기도 이천의 백자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도자기로 꼽히고 있다. 계룡산 분청사기는 고려청자나 상감청자만큼이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발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계룡산철화분청사기가 공주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에는 풀어야할 숙제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금강뉴스에서는 이삼평연구회와 공동으로 ‘이삼평과 계룡산철화분청사기 브랜드화’ 주제로 사업을 진행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지난 5월4일 아리타 이삼평도조제에 참여, 아리타와 도자관련(이삼평도자상 건립 등)에 관해 토론을 개최했다. 한국도자문화협회와 공주에서는 박지규 공주시 과장, 이삼평연구회(이종태 회장, 윤용혁·지희순)와 본지 신용희 대표와 나정희 시민기자가 참석했다./편집자
-이 기사는 2018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 기획기사입니다.- .

Ⅰ. 이삼평도조제와 아리타와의 교류
Ⅱ. 이천도자축제와 산업단지 탐방
Ⅲ. 이삼평과 계룡산철화분청사기 브랜드化
Ⅳ. 이삼평, 421년 만의 귀향

Ⅰ. 이삼평도조제와 아리타와의 교류

 1) 이삼평의 고향, 공주

▲ 반포면 온천리 이삼평기념비에서 추모제 중 이걸재 소리꾼의 추모 소리마당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 아리타도기(有田燒)의 도조(陶祖)로 추앙받는 이삼평(李參平)은 공주시 반포면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 중 한 사람이다.

그의 도자기는 일본 전국으로 퍼져 이마리도기라는 별칭과 함께 명성을 떨쳤으며 그에 의한 아리타도기의 창시는 일본 도자기사상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삼평은 1594년 또는 1596년 경 일본으로 끌려가 나베시마의 사위이자 가신인 다쿠 야스토시(多久安順)에게 맡겨졌다.

이삼평은 일본 도착 후 몇 년간 다쿠 야스토시를 위해 일했으며 18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1616년 다쿠 지역에서 아리타로 이주했다.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이 155명으로 알려지는데 이삼평은 이들 도공들을 이끌며 시라카와텐구(白川天狗)계곡 부근에 이주하여 가마를 구워 처음으로 순백의 자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자기질 도자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아리타 지역은 일본 도자기의 성지(聖地)가 됐다. 이곳에서 만든 도자기는 지명을 따 아리타 야키로 이름 붙여졌으며 일본 전역과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이삼평(1579~1655)의 출신지는 충청도 금강(金江)으로 보고 있다. 금강이란 글자의 음과 훈(訓)을 따서 성(姓)을 가네가에(金ケ江)로 하였는데 나베시마 번주에게 하사받아 이름을 가네가에 삼뻬이(金ケ江 三兵衛)라 개명하였다.

이삼평공의 계명인 월창정심거사(月窓淨心居士)는 아리타의 절 류센지(龍泉寺)의 과거장(過去帳 아리타정 중요문화재)에 기록되어 있다. 밤마다 창밖의 달을 보며 고향 공주의 계룡산을 그리워하였을 이삼평의 애절한 마음을 짐작케 한다. 

다쿠의 고라이다니 도요지 사진


2) 가라츠야끼(唐津燒)와 다쿠(多久)의 이삼평

큐슈(九州)는 한반도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일찍부터 대륙문화를 받아들여 정착시킨 대륙교통의 요지이다.

특히 가라츠(唐津)는 일본 도자기의 발생지로서 우리 문화와의 영향 관계가 깊은 곳이다. 16세기 후반의 임진왜란 때 강제로 끌려온 많은 조선의 도공(陶工)들은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개화시켜 아리다야키(有田燒) 등 이름 난 전통 도자기 문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가라츠(唐津)의 명칭은 원래 한진(韓津)이었다. 고대 한반도 사람들이 이곳과 관계를 가지면서 '한민족의 나루터'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한진(韓津)'을 '가라츠(唐津)'라고 쓰기 시작한 것은 1368년경이다.

일본에서 도자기를 '가라츠모노(唐津物)'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역사의 한 발현이며 가라츠야끼(唐津燒)의 옛 가마터들은 사가현 일대에 300여 개소 이상이 남아있다. 17세기 이후에는 류큐(琉球 현 오키나와) 열도에 수출되어, 류큐에서도 가라츠 도자기를 본뜨기 시작했다.

정유재란(1598년) 때 일본으로 끌려간 이삼평은 가라츠를 거쳐 나베시마 번주의 참모장 다쿠야스토시(多久安順)에게 맡겨져 다쿠(多久)에서 도자생산을 하게 된다.

다쿠향토사료관에는 토오진코바 가마아토(唐人古場窯跡), 고라이다(高麗谷窯跡), 오오야마후루카 가마아토(大山古窯跡), 호시로우 가마아토(保四郞窯跡) 등조선 도공들이 도기를 구웠던 가마터 사진과 자료, 또 분청사기를 전시하고 있다.

다쿠의 이 가마터들은 1993년에 발굴, 2005년 7월 국가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에도시대 말에 기록된 단큐유우시(丹邱邑誌)에는 “조선인에게 도기를 굽도록 시켰는데, 그 하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향토자료관에는 당시 이삼평을 비롯한 조선 도공이 구웠던 토오진코바 가마아토(唐人古場窯跡)에서 출토된 녹유자기와 탈철도기편들을 볼 수 있다.
 
이재황 도예가는 “이삼평은 일본 다쿠에서 16년간 머물렀으며, 철화분청사기를 다쿠에서 생산하다 후에 백자를 굽는 실험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며 “이삼평이 일본에서 백자만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철화분청사기가 사라진지 50년이란 세월이 지난 것과 연관하여 계룡산 분청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다쿠 시절 청년 이삼평이 철화분청사기(에가라츠)를 만든 유물들만 봐도 계룡산과 분명한 관련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3) 아리타(有田) 도자기와 이삼평

이삼평은 아리타로 거처를 옮긴 후 1616년 아리타 이즈미야마(泉山)에서 백자광을 발견했고 덴구다니가마(天狗谷窯)를 열었는데 이것이 1616년 일로 일본에서 자기가 처음으로 실험 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까지 이곳 아리타는 심산궁곡으로 1590년의 지도에는 전혀 지명이 나와 있지 않았던 이곳이 1680년대 지도에는 아리타 등의 지명이 보인다.

대체로 이삼평과 함께 납치되었던 사기장의 수만도 155명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1631년에는 무웅시(武雄市)에서 도자기를 굽고 있던 종전(從傳)의 미망인 백파선(百婆仙)이 동족 906명을 이끌고 이곳 아리타로 옮겨왔다.

이삼평은 도기만 생산하던 일본에서 최초로 자기를 생산, 이를 발전시켜 일본 백자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아리타에서는 이즈미야마(泉山, 백자광)과 덴구다니가마(天狗谷窯)를 사적지로 지정하여 그의 공적을 잊지 않고 있다.

또 덴구다니가마(天狗谷窯) 근처에 이삼평 묘에는 1967년 발견된 묘비가 세워져 있어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이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는 장소로 자긍심과 함께 애잔함을 느끼게 해 준다.

이삼평이 처음 가마를 연 덴구다니 가마터


4) 이삼평도조제와 도자축제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하여  아리타 시민들은 그를 도조(陶祖)로 섬기며, 그가 가마를 연 300주년인 1916년에  아리따야끼 창립 3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리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陶祖李參平之碑’를 1917년에 건립, 매년 5월 4일 이삼평도조제를 지낸다. 

한국도자문화협회 오유근 회장의 추도사 읽는 장면

도조제를 마치고 한일 기념촬영


아리타가 일본천황을 모시는 도산신사 보다 높은 산 언덕에 도조이삼평비를 세운 것은 그 만큼 이삼평공의 은덕을 잊지 않고 추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매년 4월 29일부터 5월 5일 기간 동안 도자기 축제를 하고 있으며 관람객수는 최대 약 120만 명 정도 참가하여 아리타 거리가 인파로 출렁거리게 만든다.

현재, 아리타에는 150개의 도자기 가마와 300여개의 도자기 상점이 있으며 조선 도공 13, 14 대 손들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 아리타 마을 사람들이 신사를 지어 이삼평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 같다. 

아리타의 이삼평 묘비

초대 카네가에 삼베에(이삼평)의 묘비

17세기 초, 아리타有田 사라야마皿山에서는 일본에서 최초로 자기를 구웠습니다. 그 도자기 장인들의 집단을 이끈 이가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데려온 이삼평, 즉 초대 카네가에 삼베이金ケ江 三兵衛라고 합니다.
아리타초有田町에서는 창업 300년을 맞아 1916년에 도산신사陶山神社 뒤편 언덕에 「도조 이삼평의 비 陶祖 李參平之碑」를 세워 그 공적을 기려왔습니다.
1959년에 이곳 시로카와(白川) 묘지에서 「월창정심거사月窓淨心居士」란 계명의 묘비가 발견되었고 1967년에는 그것이 이삼평의 무덤이라고 확인되자 즉시 마을의 사적(町史跡)으로  지정하였습니다.

1967년 3월 20일
아리타초有田町 교육위원회

 


5) 아리타야끼와 이마리야끼

1660년대에 들어오면서 아리타나 이마리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들이 일본에서 ‘아리타야끼’로 유명해졌으며, 아리타에서 12 km 정도 떨어진 이마리(伊萬里)항구를 통하여 에도(江戶)를 비롯하여, 유럽으로 퍼짐으로써 ‘이마리야끼’라고 불렸으며 아리타 지역의 번주에게 막대한 재정적인 이익을 주었다고 한다. 그 한 예를 당시 네덜란드 연합 동인도 회사의 일본자기 무역에 관한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네덜란드에 남아 있는 고문서에는 1664년 1년분으로 이마리 도자기 5만5천 점 이상이 판매되어 나갔음을 알려주고 있다. 섬세한 문양, 화려한 색감, 날렵하면서도 견고한 모양새가 서구인들을 압도했다.

이후 일본의 아리타는 중국의 징더전(景德鎭), 독일의 마이센과 더블어 세계 3대 도자기 도시로 발전하였다.

아리타의 300개가 넘는 도자기 공방 중 최고의 훈장을 수여받은 세 개의 가문은 겐에몽(源右衛門), 가키에몽(枾右衛門), 이마에몽(今右衛門)으로 이 세 가문이 만든 작품은 억대의 높은 값으로 팔리고 있다.

이마리의 고려인 묘를 찾은 박지규 과장과 이종태 회장이 추모의 예를 올리는 장면

6) 이삼평기념비와 학봉리 사적지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 박정자 삼거리에는 1990년 10월 한·일 양국의 새로운 우호 친선을 바라는 아리타 주민의 모금에 의해 제작된 이삼평기념비가 세워졌다.

이 기념비가 공주 온천리에 세워진 것은 도요지가 있는 곳인 계룡산 학봉리에는 도요지 사적지(사적지 333호)가 유일하여 이를 근거로 아리타와 한국도자문화협회, 그리고 공주시가 이삼평기념비를 이곳에 세운 것이다.

이는 이삼평의 출신지가 김해 또는 남원이라는 주장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금강인(金江人) ‘이삼평의 고향은 공주’ 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기념비는 이후 공주-유성간 도로확장으로 인하여 2013년부터 공주시와 한국도자문화협회, 이삼평연구회가 협의하고 공주시가 예산을 투입하여 2016년 반포면 온천리에서 학봉리 794-64번지로 이전, 10월 5일 ‘이삼평기념비 이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공주시장, 아리타초(有田町) 정장, 한국도자문화협회장, 한국세라믹연합회장, 공주 이삼평연구회와 학봉리 주민 등 300 여명이 참석하여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반포면 학봉리 이삼평공원으로 이전, 이삼평기념비 이전 제막식

게룡산 풍물단과 아리타 풍물단의 합동 공연

일본 사가현 아리타풍물단(4명)과 계룡산 풍물단, 반포풍물단 등 3개 단체는 11월 12일 이전한 이삼평기념비 앞에서 한일 한동공연을 펼쳐 공주와 아리타의 또 하나의 민간교류의 물꼬를 텄다.

‘이삼평, 도자기의 신’ 소설을 쓴 구로카미 슈텐도씨를 비롯한 아리타 일행 6명은 “2016년은 아리타야끼 400주년으로 210년만에 고려춤(풍물)을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계룡산풍물단의 전수 덕분이었다.

공주시의 협력과 시민의 열의로 성공할 수 있었음을 감사드리고 또 이삼평공에게 한국과 일본풍물단의 합동공연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아리타의 옛 문서에 ‘조선 도공들이 추석 때면 밝은 달 아래 고려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자녀대까지도 고려춤(풍물)을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공주시에서는 이삼평기념비를 문화유산으로 보호하는 한편 계룡산철화분청사기 브랜드화를 위해 이 일대를 문화공원으로 확장하고 기념전시관을 건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

▲ '이삼평,도자기의 신' 책 저자 구로카미 슈텐도

7) 이삼평도자상 건립과 아리타와 교류

이삼평공이 421년 만의 귀향, 고향인 공주시 반포면에 위치한 이삼평기념비 공원에 이삼평도자상이 건립될 전망이다. 

이삼평도자상 건립은 지난해 10월 5일 학봉리 794-64번지에 이삼평 공원에 이삼평기념비를 이전한 뒤 계룡산 철화분청사기의 우수성을 계승하고 이삼평공을 기리고자 이삼평연구회(회장 이종태)와 한국도자문화협회(회장 오유근)가 공동주관으로 공주시의 후원을 받아 일본 아리타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으로 일본측에서는 아리타정, 아리타상공회의소, 이삼평14대손이 참여하여 아리타측에서 자기상을 제작, 공주시에 기증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 공주시와 아리타에서는 2017과 2018년 두차례 회의를 갖고 건립 과정과 제작비 등과 관련하여 협의를 진행했다.

2018년 회의에는 한국측에서 한국도자문화협회(오유근, 신재수, 오웅원, 김승기)와 공주시 박지규 과장과 이삼평연구회(이종태, 윤용혁, 신용희)가 참여했다.

한일도자회의에서 공주시 박지규 과장의 인사말

 

박지규 과장이 아리타 요시야키 정장에게 기념품을 증정하는 장면

회의를 마치고 기념촬영

아리타정 요시야키 정장은 “공주시가 기념비 이전사업에 큰 성의를 갖고 진행해 주신데 대해 감사하다”고 서두를 꺼낸뒤 “가까운 시일 안에 공주를 방문하겠다”면서 도자상 건립을 위한 긍정적 검토를 표현했다.

박지규 과장은 “이삼평공의 고향인 공주시 이삼평공원에 도자상이 세워진다면 양국의 교류에도 큰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도공 이삼평을 테마로 한 새로운 문화관광자원화를 강화하여 공주의 도자문화 재활성화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공주측에서는 2016년 기념비이전식 참석에서 분청사기에 이름과 주소를 새겼던 명패를 구워 제작한 ‘분청사기 명패’를 전달했다.

신용희 대표가 야마구치 전 아리타 정장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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