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제자 사랑으로 향토사와 인문학 지켜

행단(杏壇)은 궁궐이나 성균관에서 쉼터가 되는 행정(杏亭)의 은행나무로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을 상징한다.

그래서 서울 문묘의 공자를 섬기는 행단에는 모두 4그루의 은행나무 고목이 500여년의 세월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공주 향교의 행단

조선의 유림들은 향교를 설립할  때 은행나무를 심었다. 조선 초기의 청백리의 명재상 맹사성(1360~1438)의 ‘청렴과 학문’을 상징하는 고택을 ‘맹씨행단(孟氏杏壇)’이라 부르고 있다. 이렇게 은행나무는 열매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한편 가르치는 스승과 공부하는 제자의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해준 교수! 하면 먼저 행단(杏壇)이 떠 올랐다. 그것은 강의실에서나 답사에서나 항상 열정적으로 유적을 설명하던 모습에서 제자들에게 하나라도 심어주려는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태주 시인은 이 교수를  ‘조선선비’라 불렀다. 사람의 느낌은 비슷한가 보다.  

연구실에서의 이해준 교수

40여 년을 후학 양성에 몸 바쳐 온 조선선비 이해준(공주대 사학과) 교수가 행단(杏壇)을 떠난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기자가 처음 이해준 교수를 만난게 1995년 문화원 향토사 강좌였으니 ‘공주’라는 공간에서 가까이서 25년의 세월을 그렇게 함께 보낸 셈이다. 다큐사진을 하는 기자에게 향토사의 눈을 뜨이게 해 준 이해준 교수는 말하자면 기자에게 ‘사회의 스승’이다.

2월 26일 정년식을 앞 두고 이해준 교수를 만나기위해 인사대 연구실을 찾았다. 가끔 찾는 연구실의 갈대발이 오늘따라 새롭게 다가온다. 이제 이 발을 걷을 일이 없겠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썰렁해 진다.

찻잔에 차를 따르며 이 교수는 “인터뷰는 무슨...”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기자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할 준비로 찻잔을 든다.

공주대 문화유산대학원 주관 정년 기념 특강 후 감사패를 받는 이해준 교수와 제자들

-40년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소감과 공주와 인연을 말씀해 주세요.

△인생에서 치러야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단계라고 봐요. 공주와의 인연은 고향인 청주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공주사범대학으로 유학온 것인데 1971년 당시는 조치원에서 버스로 2시간 걸려야 공주에 왔습니다.

-전공을 세 번 바꾸셨다면서요?

△고등학교에서는 이과(理科)를, 고 3 때는 미대(美大)를 꿈꾸었지만 대학에서는 역사를 전공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70년대 초중반 백제고분 조사와 실측, 특히 송산리 6호분과 무령왕릉의 내부 실측도면을 처음으로 그리게 됐죠.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사상사로 전공을 바꿔 故 윤남한 교수의 문집정리 작업과 규장각의 고도서 해제작업, 고문서 정리작업에 참여하면서 문헌연구자로서의 기록자료에 대한 남다른 경험을 축적하게 된 것도 생각해 보면 행운이었어요. 인생은 보기 나름입니다. 젊을 때의 다복한 경험과 줄타기 연구 인생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년 기념 특강을 마치고 기념촬영

-교수님은 남다른 열정으로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여 학내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많은 일을 하신 걸로 알려졌는데요. 특히 전국 최초 문화유산대학원 설립에 기여하셨는데요. 또 현종,인조비 건립 등 그동안 공주 지역에서 많은 문화활동을 해 오셨죠.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안승주 총장님과 최석원 총장님을 만난 것도 내게는 큰 복이었구요. 공주대에서의 삶은 후학들을 가르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지역에서는 공주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삶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2012년 4월 공주대 문화유산대학원 최고위과정 답사에서

2012년 4월 공주대 문화유산대학원 최고위과정 답사에서

-목포대 근무시절 현장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도서지역 자료 발굴은 선두주자로 지금도 전설로 남았는데요.

△목포대 부임 이후 서남해 도서지역의 자료를 조사, 정리하면서 쓰여지지 않는 역사, 쓰여질 필요가 없었던 민초들의 흔적에 주목했습니다. 이때 역사학과 민속학, 사회학, 인류학, 지리학의 만남이 필수적임을 체감했구요.

문화유산이 누구에게는 보물이나 누구에게는 폐물이 될 수가 있는 것처럼 보는 시각에 따라 역사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학자는 목표를 갖고 연구하지만 객관성을 갖고 포괄적으로 보는 안목과 문화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조상뿌리찾기 사업은 이해준 교수의 힘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내 유일한 사업이다. 공주 만경노씨 세미나에서 문중 문서를 설명하는 이해준 교수

2016년 10월 문화원에서 진행된 우리조상뿌리찾기(진주강씨 편) 세미나를 마치고 기념촬영

-1995년 공주대박물관회를 결성, 공주에 지역문화의 리더로도 활동을 하셨는데요. 기자도 교수님 덕분에 지역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교수로서 지역에서의 역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문화를 종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동안 특화된 전문가와 지역문화의 네트워크로 연계가 없었어요. 특히 지역민이 자부심을 갖고 주체가 되어야 살아 있는 지역문화로 그 자료가 가치가 있는 것이죠.

1995년 11월 공주대박물관회를 이끌고 익산 미륵사지를 답사하는 장면

-윤용혁 교수와의 40년 우정을 ‘오성과 한음’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요...

△윤 교수는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나는 뒤끝없이 직설적으로 내뱉는 성격이라면 윤 교수는 다 받아들이는 타입이구요. 내 평생에 윤 교수같은 친구를 두었다는 것에 고맙게 생각합니다. 

-정년 후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제도권에서 벗어나 시민들과 자유롭게 월 1회 답사를 하고 싶습니다. 또 이름없는 서원과 사우의 인물 도록을 집필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지역의 공무원과 교사 등  강좌를 통한 봉사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1970년대 무령왕릉 발굴 비화를 들려주는 이해준 교수

○수상경력은 조선시기 촌락사회사」로 제13회 치암학술상(한국사학회) 수상(95),「조선후기 문중서원연구」로 제34회 월봉 저작상(일조각) 수상(09년)했다.

○1981년 목포대 사학과 교수를 시작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1994년 공주대 인문대 사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현재까지 후학을 가르쳤다. 한국민속학회장(96-98), 교육인적자원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99-01),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01-04), 공주대 기획연구처장(04-06), 문화관광부 문화역사마을 심의위원(05-07), 농촌진흥청 겸임연구관(05-09), 교육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07-09), 충남 문화재위원회 위원(05-11),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07-현), 환경부 지질공원위원회 위원(12-현)을 역임하고 있다.

○주요 연구실적(최근 3년간)은 △2010 『충남의 민속문화』, 충청남도, 국립민속박물관(공저), △2011 『민속마을 다양화 기초조사 및 지정연구』 문화재청(책임), △2011 「노강서원 자료의 유형과 성격」,『한국서원학보』제1집, 한국서원학회, △2013 「조선조 계룡산 중악단의 문화사적 의미」,『역사민속학』 제41집, 역사민속학회 등이다. 

제자들과 정년 토크를 마치고 기념촬영

각별한 제자 사랑으로 잘 알려진 이해준 교수와 제자들은 2월 23-24일까지 한옥마을에서 그들만의 아쉬움 속에 오붓한 정년 토크 시간을 가졌으며 2월 26일 공주대에서 정년식을 갖는다.

                                       조선선비 한 사람 만났다 하리
                                        -이해준 교수님 정년의 날에-

                                                                  시인 나태주

                                           내 비록 조선시대 살아보지 않아
                                           조선선비를 만나 본 일 없지만
                                           나 오늘에 이르러
                                          조선선비 한 사람 만났다 하리

                                          그는 다름 아닌 공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님 이해준
                                         학생들 앞에서 변함없이 바른 스승
                                         학교 밖으로 나와서도 언제나 바른소리

                                         비록 꺾일지언정
                                         휘이지 않는 청청
                                         매서운 눈비 바람 앞에서도
                                        푸르름과 기개 잃지 않는 소나무 청청

                                        하지만 맑은 마음 잃지 않아
                                        배시시 소년의 웃음도 웃을 줄 아는
                                        수줍은 조선의 숫배기 남정네
                                        언제나 든든한 우리의 이웃사촌

                                        앞으로도 그의 가슴속 맑은 샘물
                                        마르지 않고 넘치고 넘쳐
                                        흐린 세상 맑게 하시고
                                        사람들 정신 또한 번쩍 들게 하시기 바라네

                                        교직 정년은 또 하나의 출발
                                        소년 이래 꿈꾸었던 그의 길
                                        다시 더듬어 새로운 길 열기 바라고
                                        묵었던 옛터 다시 다듬기 바라네

                                        내 비록 조선시대 살아보지 않아
                                       조선선비를 만나 본 일 없지만
                                       나 오늘에 이르러
                                       조선선비 한 사람 만났다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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