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2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앤디 워홀 Andy Warhol, Andrew Warhola Jr. 1928-1987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대량생산과 유통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렸고, 이러한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을 소재로 팝아트가 등장했다. 앤디 워홀은 슈퍼마켓에 넘쳐나는 식료품과 생활용품, 특히 미국 기업의 상표를 단순한 이미지, 화려한 색채, 반복, 거대한 화면 구성으로 재현했다.

미술이 아니라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광고 디자인에서나 볼 수 있는 기법이다. 일상에 널려있는 이미지를 채집해서 다시 포장하는 예술가, 그 이미지는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심미안이 있어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 찾는 대형마트, 작은 동네 슈퍼마켓 진열장에 나란히 앉은 통조림, 음료수이다. <캠벨 수프 캔>과 <코카콜라 병>은 대량생산되는 일상적이고 흔한 물건이다.

컨베이어벨트가 멈추지 않는 한 계속 생산되는 물건, 누구나 살 수 있고 전 세계 어디든 있는 유명한 상품, 대량생산된 상품을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이미지를 생산했다.

대중이 소비하는 상품을 <팩토리 The Factory>라 부르는 작업실에서 ‘예술 노동자’를 고용하여 공장에서 생산되는 소비재처럼 대량생산했다.

워홀의 작품에는 의뢰를 받은 초상화나 광고도 포함되어 있다. 신문, 잡지에 오르내리는 유명 정치인, 배우, 사건 사고 등 주제도 대중적인 것을 선택했다. 유명인들은 그의 초상화 작품이 되기를 원했다. 팩토리에서 예술 노동자들은 일반 대중이 신문 보도로 접하는 제트기 사고, 자동차 사고, 재해 등을 다시 재생산했다.

사진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내는 작업방법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단순한 생산품처럼 보였다.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미술품이 예술가의 유일무이한 창조물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부정한 것이다.

앤디 워홀은 상업미술보다는 순수미술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었지만, 예술을 고상하거나 특별한 사람들에게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세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예술가들은 하나의 작품을 잘 그려서 비싸게 파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미술품은 작가가 직접 그린 한 점 이외엔 없다는 사실은 작품의 소장 가치 또한 높였다. 그러나 앤디 워홀은 이와는 반대로 ‘미술품의 대량생산’을 최초로 시도했다.

작품을 대량 생산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되살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상업과 예술을 혼합하고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를 허물었다. 영화, 광고, 디자인, 책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이 나라가 정말 멋진 것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가 똑같은 것을 사는 전통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TV를 보면 코카-콜라가 나오고, 대통령도, 리즈 테일러(미국의 영화배우)도, 우리도 모두 코카-콜라를 마신다. 콜라는 그저 똑같은 콜라일 뿐, 아무리 큰 돈을 준다 해도 더 좋은 코카-콜라를 살 수는 없다. 모든 코카-콜라는 동일하며, 똑같이 좋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리즈 테일러도 알고, 대통령도 알고, 가난한 자도 알고, 당신도 안다.”

앤디 워홀의 작품에는 일상, 유행… 그 시대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는 미술이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미술이 일반적인 대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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